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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조병수 씨의 양평 수곡리 ㅁ자 집

인테리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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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조병수 씨의 양평 수곡리 ㅁ자 집
땅속에 박힌 사과 상자
이 집이 가장 근사할 때는 장마철이다. 장마철엔 밖으로 난 문은 걸어 잠그고 중정 쪽으로 뚫린 통유리창을 모두 열어놓은 채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마신다. 그렇게 빗소리에 취하다 보면 장마철이 쉬이 가는 게 슬프고도 슬프다. 비가 잠시 울고 간 후 구름 사이로 달이 오르면 너도나도 시인묵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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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자 안에 가로세로 5m의 구멍이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뚫려 있는 집. 기둥도 대들보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집. 그 안에 존재하는 건 땅, 하늘 그리고 빛뿐인 집. 밖은 모두 막혀 있지만 안은 트인 집. 태고의 기억을 담은 바위 네 개가 마당에 누워 있는 집. 뻐꾸기가 놀러 오는 집. 달 맞으러 가는 집.

허어, 달까지 낮은 자리에 떴구나. 이 집 지붕 위에 짚자리 깔고 앉아 달을 보면 앉은 곳이 달인지 지구인지 헷갈린다는데…. 저 달에 취해, 여름밤의 달큼한 냄새에 취해 오늘밤 또 잠을 설치게 생겼다. 저 둥그런 달이나 가져다가 가슴 가득 지어야겠다. 양평군 지제면 수곡리의, 건축가 조병수 씨 집 지붕 위에서 맞는 여름밤이다.

할 말을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안 하는 게 더 멋지다는 걸 일깨워주는 그런 집을 짓는 건축가 조병수 씨. 수곡리 언덕배기에 가로세로 13.4m의 정사각형 집을 짓고 여름밤을 즐기는 중이다. 윤기 하나 흐르지 않고 텁텁한 잡곡밥 같은 노출콘크리트 집에서. 밖으로 난 문이나 창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네모반듯한 사과상자 같은 집이 이 집이다. 대신 안으로는 가로세로 5m의 중정이 통유리창으로 뚫려 있는 ㅁ자 집. “나무로 만든 사과상자, 그 사각 상자는 투박해도 아름답다. 텅 빈 채로 참 아름답다. 그 텅 빈 공간이 잘 익은 사과로 그득 채워지면 채워진 대로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움은 황금비율 같은 시각적 비례에서 오는 게 아니다. 채워짐에선 넉넉함을, 텅 빔에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으니 아름다운 거다(‘사과상자에 대한 나의 생각’, 2007년 4월호에 실린 조병수 씨의 글).” 조병수 씨는 오랫동안 땅속에 박힌 사과상자 같은 집을 꿈꿨다. 판판한 광야에 땅속으로 박혀 있는 사각 나무 상자. 안에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으면 그 안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와 달을 보면서 침묵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집. 형태는 없고 공간만 있는 집. 그는 이 꿈을 담아 ㅁ자 집을 짓고선 그 안에서 음악도 듣고 도면도 그리고 달빛에 발도 적신다.

1 2번 사진 속 위치에서 다시 왼쪽으로 90도 정도 몸을 틀면 이 풍경이 나타난다. 집 안엔 ‘수정원’이, 집 밖엔 마당이 있다.
2 밖으로는 막혀 있는 줄 알았는데 소나무 문을 열면 수곡리 논밭이 눈으로 들어온다.
3 초등학교 1학년짜리 조카가 그린 이 집 풍경. 사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그림 속엔 소나무 문, 바위, 꽃무리, 뛰어노는 아이들, ‘뻐꾹’거리며 노래하는 새들이 있다.

2.4m짜리 미닫이 철문을 열면 초록으로 무너지는 듯한 뒷산, 앞뜰의 소나무, 수곡리 논밭이 보인다. 앞마당엔 익산에서 올라온 바위 네 개가 누워 있다. 작은 게 8톤, 큰 게 10톤짜리인데, 그 바위에 누우면 신윤복의 ‘선유도’ 속으로 순간이동한 듯하다.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징검돌이 있네 / 나무는 바람 따라 흔들리네 / 우리는 신나게 뛰어놀고 / 새들이 지저기네 / 바위는 만지면 울퉁불퉁 / 하고 딱딱하네.(아이가 쓴 글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원문 그대로 싣는다)’ 조병수 씨의 초등학교 1학년짜리 조카가 이 집 마루에 앉아 쓴 동시 <풍경>이다. 이 집을 두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글은 못 만들어낼 것 같아, 잠시 우두망찰해진다. “이 집의 뻐꾸기가 아주 귀여워요. 처음 집 짓고 들어간 2년 전만 해도 우는 방법을 잘 몰라서 이상한 소리로 울었어요. ‘뻐’ ‘뻐꺽’ ‘꺽’ 하면서. 요즘은 ‘뻐꾹뻐꾹’ 정말 잘 울어요. 주변에 집이 없어서 새들이 많이 놀러 와요. 올빼미도 살았었어요. 밤 10시쯤 되면 올빼미 두 마리가 나무에 앉아 있다가 들짐승을 낚아채는 것도 볼 수 있었어요.” 불필요한 감정이라곤 1mg도 묻어 있지 않은 말로 이 집의 건축을 설명하던 그가, 뻐꾸기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벙긋 웃었다. 보는 이도 함께 웃게 할 만큼.

이 집은 가로세로 길이가 13.4m밖에 안 되고, 그조차도 가로세로 5m의 중정이 가운데 공간을 파먹은 아주 작은 집이다. 방이라곤 1평 남짓한 황토방 하나뿐이고, 다른 공간은 복도이면서 벽이면서 방이다. 이렇게 작은 집은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마음이 작아야 한다. 무엇이 더 소중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가릴 수 있는 깨우침이 있어야 이런 작은 집에 살 수 있다. 그렇게 소박한 마음으로 지은 집은 실제론 작지만 그 안은 넉넉하고 편안하다. 문을 열어젖히면 풀과 벌레와 공기가 뒤섞인 여름밤 냄새가 훅 끼쳐 오고, 황혼의 연약한 햇살이 드는 집. 마주 앉으면 발과 무릎이 서로 닿아 찾아온 손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집이다. 그래서 더 넉넉한 집.

1 손 씻는 방의 선반은 소나무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춘양목을 켜서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주워 온 예쁜 강돌, 노출콘크리트 벽에 기대어놓은 박달나무 다듬잇돌이 그림 같다.
2 제주도 옛집의 광 문짝으로 만든 장은 책장으로 쓰고 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지붕의 하중을 지탱하는 대들보와 기둥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흥미롭게도 이 집엔 대들보, 기둥, 방과 방을 나누는 벽이 없다. 대신 5m 간격으로 고재 기둥 열 개가 서 있다. 보나 기둥이 따로 필요 없이 열 개의 나무 기둥이 지붕의 무게를 받쳐준다. 검고 무뚝뚝한 고재 기둥은 가로세로 13.4m의 작은 공간에 띄엄띄엄 세워져 있어 이 끝과 저 끝 사이를 가까우면서도 멀어 보이게 한다. 그 존재만으로 공간에 깊이를 준다. 이 기둥 외에 이 집엔 장식이라곤 없다. 갱지 위에 연필로 찍어놓은 것처럼 분명하되 담백하다. 이 집은 밖으로 난 문으로 내다보는 자연보다 안에서 보는 자연이 더 드라마틱하다. 통유리창으로 된 안쪽의 상자가 그럴듯한 프레임이 된다. “형태가 단순해질수록 그 상자는, 그 집은 자연의 아름다운 형태를 담는 액자가 됩니다.” 건축을 말하면서 그는 다시 말을 아꼈다.

그 안쪽의 상자 가운데에는 연못 같은 수정원(조병수 씨는 물이 채워진 정원을 ‘수정원’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이 있다. 이 수정원은 지하수를 끌어와 흘려보내고 그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돌아오게 한다. “정원 안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사는데 보셨어요? 슈퍼마켓 겸 추어탕 집에서 사다 넣은 놈인데 3년째 잘 살고 있어요. 작년에는 새끼도 쳐서 세 마리가 같이 놀았어요. 올해는 늦봄이 다 돼서야 물을 채워줘서 그 녀석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용케 살아 있더라구요. 물 밑으로 진흙 50cm가 깔려 있는데 아무래도 그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온 것 같아요. 허허.”

3 육중한 강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 현관이 나타난다. 대나무에 햇살을 주기 위해 설계 초기부터 지붕 한쪽을 뚫어놓았다.
4 거푸집에 시멘트를 부어 한 덩어리로 만들어낸 벽난로, 그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놓은 다듬잇돌, 형광등 두 개를 이어서 벽에 붙인 조명등.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집이다.

집 안 구석구석엔 좋은 나무가 수두룩하다. 1백 살도 더 먹은 고재 기둥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집의 천장도, 바닥도, 문도, 창문도, 짜 넣은 수납 가구도 모두 소나무로 만들었다. 손 씻는 방의 선반은 소나무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춘양목(경상북도 북부지방과 태백산맥에서 나는 소나무로 대궐이나 사찰의 건축용 목재로 많이 쓰임)이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놓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는 다듬잇돌은 박달나무다. 제일 근사한 건 벽에 기대놓은 제주도 옛집의 광 문짝이다. 나무가 단단하고 거칠어서 도끼처럼 생긴 도구로 쳐서 깎아내는데 그 결이 깊숙하고 아늑하다. 작업 테이블 옆에는 역시 이 나무로 만든 예쁜 장이 서 있다. “우리의 옛 장은 대강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순서대로 끼워야 짝이 맞아요.” 저 예쁜 장에서 시집 한 권 꺼내 읽다, 다듬잇돌 베고 눈물 그렁해지는 졸음을 즐기고 싶다.

객이라도 마음을 쉬게 하는 수곡리 집 마당에서, 바위에 걸터앉아 뻐꾸기 소리 들으며 마음을 내려놓는 참이다. 아, 지붕에 올라가 달구경 하며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나 읊고 싶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얼 그리 다투시나 / 부싯돌 불빛처럼 짧은 시간에 이 몸을 맡긴 처지이면서.” 하지만 그 순간, 조병수 씨가 이 집을 말하면서 선문답처럼 건넨 건축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빗소리, 흙냄새, 조용히 내려앉는 하늘을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반쯤 졸기를 좋아합니다. 집을 어떻게 꾸미고, 무엇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 어떻게 함께 지낼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고 싶습니다. 상자와 자연 사이, 상자와 사람 사이, 상자와 상자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동을 즐기고 싶습니다.” 맑은 산책 후 몰려드는 졸음처럼 어느새 엷은 졸음이 다시 찾아왔다.

5 보나 기둥이나 벽 대신 지붕의 하중을지탱하는 고재 기둥.
6 대들보도, 서까래도, 방도, 방을 나누는 벽도, 그 흔한 침대 하나도 없는 집이다. 문 대신 통유리창으로 수정원과 내부 공간을 가르고 5m 간격으로 점처럼 고재 기둥을 찍어놓았다. 족히 3m는 됨 직한 저 앉은뱅이 테이블이 가끔 침대로 쓰인다.

* 이렇게 깊고 그윽한 집을 짓고 때론 주인처럼 때론 객처럼 머무는 건축가 조병수 씨. 건축을 말할 땐 더 말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그는 집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족하다면서 자신의 등장을 거절했다. 그것도 아주 쑥스럽게. 결국 주인 없는 집을 찾아가 비현실적으로 청명하게 우는 뻐꾸기, 서로를 희롱하는 나비 두 마리와 함께 촬영을 마쳤다. 조병수 씨는 그가 좋아하는 노자의 <도덕경>처럼, 민화처럼, 이름 없는 도공이 거칠게 뽑아낸 흙빛 이조자기처럼 군더더기 없는 집, 형태는 없고 공간만 존재하는 사과상자 같은 집을 짓는 건축가다. 그의 건축설계회사 조병수 건축 연구소(02-537-8261)에서는 그동안 -자 집, ㄱ자 집, ㄷ자 양철지붕집, 세 상자 집, 황인용의 음악실 ‘카메라타’, 이외수 집필실같이 담백하고 아늑한 동굴 같은 집을 설계해왔다. 최근작으로는 사간갤러리, 램프 빌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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