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정윤숙 기자 / 진행·김희경‘프리랜서’ / 사진·홍중식 기자
설계사무소 코어핸즈 대표이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부곤의 집은 그에게 휴식을 위한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평소에는 자신만의 일에 푹 빠질 수 있는 작업실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파티 장소로 쓰인다는 그의 개성 있는 집을 들여다보았다. |
인테리어 설계사무소 코어핸즈의 대표이자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부곤(49). 두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짧은 헤어스타일과 동그란 뿔테 안경, 블랙 의상만을 고집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이런 성향만큼이나 뚜렷한 개성을 그의 집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업실이자 생활 공간인 엣더몬(At the Morn)은 평창동 언덕 주택가에 북악산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지은 3층 건물로 그가 직접 설계한 곳이다. ‘아침녘’을 뜻한다는 엣더몬의 녹색 실내 정원을 지나 노출 콘크리트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코어핸즈의 사무실이 나온다. 3층으로 올라가면 남향으로 난 통창으로 한낮의 햇살이 그대로 들어오는 그만의 개인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과 놀이, 휴식이 공존하는 그의 집은 서로 경계 없이 열린 공간으로 설계돼 있다. 집 안 어디에도 문 하나 없이 오픈된 구조로 돼 있으며 노출 콘크리트와 마루재로 마감한 바닥재, 곳곳에 사용한 한지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실의 맞은편에는 와인바가, 와인바와 이어진 곳에는 서재가, 서재와 통하는 곳에는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으며 작업실은 거실의 베란다와 연결돼 있어 다양한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만의 개성은 회색의 노출 콘크리트와 한지를 이용한 마감재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차갑고 삭막할 것만 같은 노출 콘크리트를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소재인 한지로 감싸 내추럴한 분위기를 냈다. 집 안의 가운데에 위치한 와인바 역시 한지를 사용해 자연미를 살렸는데, 와인바의 테이블을 한지로 마감하고 그 둘레를 투명한 유리로 감싸 심플한 느낌을 강조했다. 와인바의 위쪽으로 와인바의 길이에 맞게 사각형 선반을 제작하고, 와인바 테이블과 천장에 달린 와인잔을 넣어두는 랙 사이에 두어 깔끔하게 마무리한 솜씨가 눈길을 끈다.
“와인을 좋아하다보니 와인바가 집 안에서 중심 역할을 하도록 꾸몄어요. 손님이 오면 바로 와인바로 안내하고, 손님들을 초대해 파티를 즐길 때도 와인바에 있는 시간이 많거든요. 주방 공간을 줄여 그 공간을 대신 활용했죠.”
집에서 음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그는 조리공간은 최소화하고 다른 공간의 비중을 높였다. 조리공간에는 와인저장고와 오븐을 빌트인으로 제작한 주방 가구를 두고 무광택의 화이트 컬러로 마감해 집 안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다.
와인바를 지나면 집 안의 다른 어느 곳보다 전통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좌식 스타일의 서재가 나온다. 구름 모양의 한지로 만든 등과 고가구를 놓은 서재는 단출해 보이면서도 멋스러움이 가득하다. 벽면 가득 쌓인 책들과 그가 모아온 음반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이곳만의 멋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더해준다. 서재가 사색적이고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라면, 그와 맞닿아 있는 작업실은 좀더 활동적이면서도 경쾌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8인용 식탁 정도 되는 커다란 유리 상판의 책상 위에는 요즘 한창 진행되고 있는 현장들의 설계도면과 전문서적들이 가득 쌓여 있다. 뒤쪽 벽면으로 책장을 붙박이로 짜 맞추었는데, 슬라이드를 보거나 도면을 그릴 수 있는 작업대를 따로 두어 실용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책상 맞은편에 즐비하게 놓인 와인 스크루는 몇 년 전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들렀을 때 맛본 와인 맛에 반해 모으기 시작한 그의 애장품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와인 스크루가 눈에 띄면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그 개수만 5백개 남짓된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와인 스크루는 정갈하게 정리하지 않고 그의 자유로운 감성대로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그저 와인이 좋아서 즐기다보니 와인 코르크를 따는 작은 소품에도 눈길이 가더군요. 그래서 사 모으기 시작한 게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어요.”
거실에서 서재로 향하는 베란다에는 화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다양한 생김새를 한 야생화와 넝쿨 식물, 수경재배 식물, 행잉 바스켓들이 어우러져 작은 정원을 연상시킨다. 머리도 식히고 집 안에 초록 식물들을 들여놓을 생각에 시작한 식물 가꾸기는 그의 취미가 될 만큼 요즘 그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열려 있는 여느 공간과 달리 침실은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작업실과 드레스룸을 지나 작은 복도를 따라가면 나오는 침실은 따로 문을 달지 않아도 안쪽으로 배치돼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이 된다. 혼자 편안히 영화를 보거나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고 유리창을 떼어낸 뒤 작은 베란다를 만들어 다양한 식물들을 가꿀 수 있도록 했다. 침실에 딸린 욕실에도 문을 달지 않고 자유롭게 꾸민 것이 특징.
젊은 시절,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한 이후 통기타를 둘러메고 라이브 무대에 선 적도 있었다는 그는 최근에는 ‘하우스 예술 파티’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각종 공연과 전시를 열고 있다. 격월에 한 번 정도, 예술 파티가 있는 날에는 집에 와인을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맞이한다고.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 공연과 전시를 보면서 좋아하는 와인을 즐기다보면 쌓인 스트레스까지 한번에 풀린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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